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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읽고
◈ 최우수작 - 이은주
“살아가 보자.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 내음이 그날의 공기를 사로잡고, 바닥의 질감은 한껏 보드랍던 어느 날.
평소와 달리 산 내음과 운무는 우리를 반긴다.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동료 선생님과 유쾌한 수다를 떨며 허겁지겁 점심을 소화하고 내려가던 중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비석과 마주했다. 9개의 아리송한 한자가 기다랗게, 꽤 의젓하고 묵직한 모양새로 대신공원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한자를 그리 많이 알고 있는 편이 아니었기에, 동료 선생님의 도움으로 더듬더듬 읽어나간 그것은 다름 아닌 충무공 이순신 영모비였다. 웬 갑자기 이순신 비석이 바다 근처도 아닌 공원 입구를 지키고 있는 걸까? 불과 두 달 전 나의 모습이지만, 지금에 와서 고백한다.
이 책을 만나기 전 나는 이순신 장군 하면 떠올 릴 수 있는 생각은 단 3가지에 불과했다. 첫째, 최민식 배우가 떠올랐다. 둘째, 동전 어딘가에서 스치듯 본 것과 셋째, 영화 명량에서 “아직 신에겐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와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이란 대사로 나의 심장을 쿵쾅쿵쾅 뛰게 만든 딱 그 정도, 머리를 아무리 굴려보아도 솔직히 여기까지다. 적어도 이 책을 만나기 전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에겐 고등학교 시절 소중한 멘토가 있었다. 간략한 캐릭터는 그랬다. 나와 나이는 2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묵직하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할 줄 알았다. 그분은 학창 시절 전교 1등을 거의 놓친 적이 없었지만, 누구보다 겸손했고, 장래 희망이 대통령이었던 아주 매력적인 분이었다. 자연스레 나도 정치학도가 되고 싶었고, 그분이 꿈꾸는 대한민국을 나도 꿈꿔갔다. 하지만 원하는 대학에 바로 입학하지 못했고, 나의 수험생활은 그렇게 길어져만 갔다. 그 덕에 나의 학번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속상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분과 함께하는 캠퍼스 생활을 가로막은 방해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불가항력적인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수능을 치르고 난 다음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분이 군 복무 중 폐암 4기를 진단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술과 담배를 태어나서 한 적이 없는 사람인데 폐암이라니.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고, 답답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지만 내 마음 한편 당연히 극복해내고 이겨낼 것이라는 마음이 컸다. 국군수도병원에서 아산병원으로 이동하여 항암치료를 이어나갔다. 젊은 나이여서 더 그랬을까? 못된 암세포들은 누가 더 빨리 결승점을 향해가나 시합이라도 하듯 그렇게 오빠의 몸속으로 퍼져나갔다. 그러고 보면 그날 아침은 유난히 고요했던 것 같다. 6월 어느 토요일 아침, 울리는 문자 소리에 잠을 깼다. 오빠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문자를 받은 나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나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초읍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멘토는 하늘나라로 먼저 긴 여행을 떠나버렸다.
그 일련의 과정들 때문인지 나는 진로를 바꾸어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1학년 2학기 교양과목 중 대학 생활과 진로라는 과목이 있었다. 나의 적성에 대해 이것저것 정보를 채우던 중 마지막 질문을 본 나는 순간 멈췄다. 한동안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은 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머뭇거렸다. 당신의 멘토는 누구인가요? 떨리는 마음으로 오빠의 이름을 정성스럽게 적었다. 그렇게 나의 멘토는 어떠한 가치를 인생에서 가장 선하게 두고, 어떠한 마음으로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알려 준 채 조금은 긴 여행을 떠났다. 카페 구석에 앉아 이 책을 읽으며 눈시울이 여러 번 붉어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막 실연당한 여자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 내 눈물의 이유를 찾아보면 2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첫째로 무지한 내 모습에 대한 죄송함 때문이다.
수험서 임진왜란 부분은 한두 페이지 분량으로써 장군 이름, 전투 순서, 전투 승패도 외우기에 벅찼다. 장군은 왜 이리 많고 전투는 왜 한곳에서 하지 않았던지. 3대 대첩만 외우면 안 되려나?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나는 16c 무능하고 무능했던 선조 때 왜놈들에게 짓밟혔던 역사까지 마음을 두기엔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조선 시대는 약 200년간 전쟁이 없던 평화의 시대인 반면,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약 100년간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마침내 열도 전체를 통일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전투력 레벨부터 조선과 큰 차이가 있었을 것 같다. 그 당시 다이묘들은 타국 조선에서의 전쟁을 반대하였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 진출의 야망을 꺾진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선조에게 다른 보고를 올린다. 만약에 김성일이 아닌 서인 황윤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조선도 적극적으로 전쟁 대비를 했었더라면, 역사는 어떠한 방향으로 쓰여 갔을까?
징비록에 보면 류성룡이 김성일에게 질문한 내용이 나온다. 정말 일본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 같냐는 질문에 김성일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어찌 일본이 쳐들어올지 안 올지 알 수가 있나. 지금 전쟁 준비까지 한다고 하면 민심이 동요될까 하여 그리 말했을 뿐이다. 서인 황윤길이 그리 말하니 동인 입장으로 내가 반대했을 뿐이다. 그 당시 조선은 과열된 붕당정치로 인해 국론조차 균열이 가고 있었다. 진짜 이 나라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은 채 자신의 밥그릇만 챙겼던 조정. 명나라 눈치만 보며 맹목적인 중화사상에 푹 빠져있었던 조정.
지금의 때와 크게 이질감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책에서 “난리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오직 사람이 부르는 것이다”라는 소제목이 매우 공감되었다. 하지만 단군 할아버지께서 하늘에서 보시고 놀래 셨는지, 기적적인 타이밍으로 하늘은 난리를 부르는 사람과 이 난리를 해결할 사람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었다. 류성룡은 주변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혀가며, 이순신을 종 6품 정읍 현감에서 정 3품 전라 좌수사로 파격 인사를 강행했다. 준비된 사람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것도 정말 능력 중 하나인데, 마치 미리 쓰인 각본처럼 이순신 장군이 준비돼 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나의 고등학교 도서관 입구에는 금색 아크릴 글씨로 “사람이 미래다”라고 붙어있었다. 그 당시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한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올 날 즉 미래를 열어주었다는 것은 이순신 장군에게 꼭 맞는 말이다. 정말 이런 사람은 미래가 될 수 있구나 싶다.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의 전쟁 준비는 꼼꼼하고 정성스러웠다. 왜군의 정보를 상세히 수집하고 연구했으며, 병법서를 가지고 참모들과 함께 밤새워 토론하였으며, 임진왜란이 터지기 직전 3개월간 무려 30여 차례의 활쏘기 대회로 전투력을 강화해나갔다고 한다. 그 가운데 항상 이순신이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순신 장군의 행보가 가치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바로 스스로 행하며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리더의 모습은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 있어지는 리더들과 다소 상반되는 모습이기 때문에 안타까울 뿐이다. 왜적의 최신 무기였던 조총과 안택선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순신은 우리가 가진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극대화한 거북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거북선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게 된 나는 이순신의 연구심에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디자인하였구나. 어찌 이리도 정성스러울 수 있단 말인가.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개인의 출세와 명예, 안위, 부, 편안함이 아니라 지극히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이 강산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뿐이었다. 드디어 1592년 전쟁 발발 하루 전 극적으로 거북선이 완성되었다. 4월 13일 그렇게 7년간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왜적에게 무방비로 쉽게 뚫려버린 부산성 전투 및 다대포 전투, 동래성 전투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순신 장군이 함께하는 해전에서는 두말할 것 없이 대승하게 된다. 1차 출정으로 옥포, 합포, 적진포 해전. 2차 출정으로는 사천, 당포, 율포 해전, 3차 출전으로 한산도, 안골포 해전까지 모조리 다 이겨버린다. 처음에 너무 쉽게 육지가 뚫려서 20여 일 만에 왜군은 한양까지 탈환했지만, 해전에서는 전혀 다른 입장에 많이 당황했겠다 싶었다. 읽는 나도 이순신 장군의 상황 판단력 및 전투력, 거북선의 활약,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리더십에 감탄할 따름이었다. 마치 VR을 쓰고, 거북선 위에서 이순신 장군의 지휘를 받으며 경상도와 전라도 바다를 이곳저곳 누비며 전쟁을 하는 것 같았다. 왜적에 침략에 맞서 작디작은 한반도를 지키기 위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처절하게 싸워 지켜낸 이 땅에서 2020년의 나는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함을 표한다. 더불어 수험생활 때 글로만 공부했던 이순신의 발자취 하나하나 마음 깊이 새기고, 시간을 내서라도 그 발걸음이 있는 곳에 내 발걸음도 포개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내 눈물이 떨어졌던 이유는 이러하다. 이렇게 살아가 보고 싶은 삶이 생겼기 때문이다. 20대 초반부터 나는 자기 계발서에 중독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자기계발서와 책들도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32살에 위인전이 내 마음을 움직이게 될 줄이야. 21살 키보드에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적었던 그 멘토가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일들은 지난날의 나에게 과거의 순간으로 멈춰있지만, 이순신 장군은 지금 내 눈앞에 살아서 움직인다.
인생을 살다가 흔들리는 순간, 조금은 세상과 타협하고 싶고 정도껏 눈치 좀 보고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이 책을 펴보면 된다. 이순신 장군의 선공후사 가르침을 생각하며 그 일의 결과는 어떻게 되는지 역사는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노력해도 날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시기 질투하고 모함하고 세상에 지쳐서 그만 포기하고 싶을 때 이 책을 펴보면 된다. 선조와 원균이 이순신 장군을 대할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역사는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나이가 들어가며 나도 모르게 내 두 귀를 막고 꼰대가 되어 살아가려고 할 때 이순신 장군은 늦은 밤 장군들과 진솔하게 생각을 나누고 병사들과도 격 없이 술을 마시며 마음을 나누었던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 아닌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로 불의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당했을 때도 자신의 결백을 즉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일기에 꾹꾹 자기 마음을 눌러 담으며 감정을 절제하고 정돈하고 수양했다는 것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설렁설렁 살고 싶고 이 정도만 해도 괜찮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순신 장군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심을 가지며 모든 일을 정성스럽게 사랑을 담아 해나갔다는 것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조금은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남을 밟고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이순신 장군은 선한 경쟁을 통하여 오직 자기 실력으로 이루어 냈다는 것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시대만 다를 뿐이지 모든 상황은 오늘날의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때마다 이 책은 나에게 아주 좋은 책 아니 내 옆에 동행하는 멘토가 되어 내 삶을 이끌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1살에 이별한 멘토를 32살의 나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단 하루의 삶도 그에겐 간절했을 것이다.
그 삶을 나는 아무런 대가 없이 지금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정성스럽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 보자.
이순신 장군 할아버지가 전쟁을 마치고 피곤한 와중에도 종이에 꾹꾹 눌러 쓴
그날의 기록들이 헛되지 않을 수 있도록.
◈ 우수작 - 정상엽
“영웅이 되는 법”
1592년, 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땅과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 전국 시대를 종결 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칼날이 선조의 턱 밑에 다다르자 그는 급히 도망갔다. “내가 천자의 나라에서 죽는 것은 괜찮으나 조선에서 적의 손에 죽을 수는 없다.”라며 임금은 본인 목숨과 권력을 유지하기에 급급했다. 조선의 관군들은 곳곳에서 격파되고 적의 칼날은 무자비하게 백성들을 도륙했다. 이 상황 속에서 조선이 멸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순신, 단 한 명의 장군 덕분이었다.
이순신을 책의 묘사대로 표현하면, 강직하고 올곧았으며 불의를 용인하지 못하였고 동시에 정이 많았으나 신체적으로 특출난 장군은 아니었다. 부패한 관리들과 달리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언행에 대해 책임을 졌고 전투 후 모두의 공로를 자세히 써 상부에 보고하는 등 공명정대했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떻게 실제로 이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인격적으로 완벽에 가까움을 보였다. 그래서 모함도 당하고 미움도 사 본인의 역량을 채 못 펼칠 수도 있었지만 하늘의 뜻인지 전라좌수사가 되어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는데 성공하였다. 아무리 신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힘들어도 적을 물리치는 일에만 몰두하고 개인적인 일을 모두 사사로운 것으로 치부하고 죽음의 두려움에서부터 도망가지 않고 당당히 최전선에서 모습을 보인 그의 일화들은 그가 왜 영웅이라 불리는지 이유를 가르쳐준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지금 육군사관학교 생도이다. 미래의 군 장교가 될 것이고 당장 3년 뒤엔 소대장이 되어 30여 명 되는 인원들을 인솔할 것이고 운이 따라준다면 수만의 인원들을 지휘하는 기회도 생길 것이다. 급박한 상황 속 나의 판단은 결코 가벼운 결과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내가 생도가 되며 이순신과 같은 영웅들과 안중근 의사와 같은 순국선열분들에 관한 이야기가 남의 일이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 각각 인물들의 죽음이 더욱 무겁게 다가왔고 이순신의 스트레스와 고뇌 또한 감정이입이 되었다. ‘내가 그 상황 속이었다면…’이라는 가정을 수없이 해보아도, 도저히 이순신과 같은 영웅이 될 수가 없다고 결론이 났다. 이순신의 걸출한 능력과 별개로 나는 이순신과 같이 용감하고 열정적으로 적들과 싸울 용기가 부족하다. 그의 비범함은 분명 남들과 다른 ‘무언가’에서 나왔을 터이고, 나는 그 ‘무언가’는 엄청나게 커다란 ‘동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겐 그와 같은 특별히 거대한 ‘동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순신에게만 있던 특별한 ‘동기는 그의 동력이었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게 만들었으며, 그의 목표임과 동시에 삶 그 자체였다. 책에서 나온 ’동기‘는 특별한 것이 아닌 사랑이었다. 그가 조선과 조선 백성을 사력을 다해 사랑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이 살아남는 것을 두려워했다. 최전선에서 지휘하는 것을 선택해 적을 내모는데 열을 다했고 아무리 신체적·정신적으로 힘들어도 버텨내어 적을 확실하게 깨부수었다. 사랑이 있어 적을 철저히 부술 전략을 만들고 실행하였으며 누구보다 많이 사랑했기에 제 한 몸 바쳐 지켜내었다.
나는 아직 이순신과 같은 각오와 다짐 그리고 조국애가 부족하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로서 지켜야 할 신조를 매일 같이 말하지만 이순신과 같은 깊이가 부족하다. 나는 아직 일반 시민들보다 나의 가족들이 더 소중하고, 지금 당장 전쟁이 발발해 최전선에서 전투를 치른다면 몹시 두려워 도망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 중 나의 가족이 부고 사실을 듣는다면 그 자리에서 슬퍼해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흐려지고 나의 책무를 다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점들이 다른 장수들과 이순신 사이의 차이를 크게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장수들은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원균의 경우 본인의 함대를 직접 수중에 가라앉혔고 다른 많은 장수들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적을 물리치기 위해 마주하지 않고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위해 도망가기 바빴을 터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하물며 임금까지 도망간 상황에서 사랑하는 조국과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해 긍정적 결과를 이끌 수 있었다. 이런 그의 승전 하나가 패배뿐이던 조선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고, 권율 장군과 수많은 의병과 의병장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도와주었다.
이처럼 이순신은 본인의 무공 이외에도 다양한 효과를 전국적으로 미쳤을 것이다.
영화 『명량』에 보면 이순신의 존재 자체를 왜적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표현한 장면이 있다. 또한 책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전라 좌수영 본진 근처로 모이며 이순신에게 기대었다. 바다에서 패배를 모르던 이순신의 존재는 왜적들에게 정말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며 동시에 조선 백성들에겐 희망의 존재였다. 그가 백의종군한 이유가 선조가 시기했기 때문이라는 일각의 가설까지 존재할 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순신만큼 잘 싸우진 못하더라고 나의 직무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면 위에 말한 세 가지를 반드시 지녀야 한다. 지금은 그 크기가 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생도 생활을 하며 나만의 동기를 키워나가 국가와 시민들을 사랑하겠다. 그것이 짧은 시일 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생에 실행하여 국가가 나의 능력을 필요로 할 때 최대한 힘을 낼 수 있도록 하겠다. 나의 그런 모습을 보며 누군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더더욱 정진하도록 하겠다.
책을 읽으며 위의 사고과정을 거쳤고, 다시 한 번 이순신의 대단함을 느꼈다. 개인적인 일보다 공적인 일을 더 중요히 여기는 모습들, 상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모습, 고문의 고통으로 몸이 망가져도 버티는 그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그의 대단함과 나의 부족함을 동시에 잘 느낄 수 있다. 내가 다짐한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나의 모습의 기리가 아직 분명히 존재하지만, 육군사관학교 생도로서 책무를 다하고 동시에 개인적으로도 노력을 한다면 점점 더 괴리가 좁혀질 것이라고 다짐한다.
◈ 우수작 - 여은화
“제 힘으로 죽을힘 다해 본 적이 있는가.”
어렸을 적 초등학교의 커다란 운동장에는 이순신 동상이 있었다. 크고 무거워 보이는 갑옷에 긴 칼과 근엄한 표정이 그저 무서웠고, 이름 뒤의 ‘장군’이라는 호칭 때문에 고무줄놀이에 몰두하는 나에게는 관심 밖의 전쟁 영웅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나이까지 한 번도 존경하는 사람을 묻는 질문에 이순신을 말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대학 때는 군부 정권이 불의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무인을 최고의 역사적 인물로 내세워 국민들을 의식화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애써 외면하기도 했었다. 그들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는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이용된 이순신 장군까지 폄하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런 나에게 이 책은 이순신에 대해 ‘공부’를 하게 했고, 존경과 연민을 갖게 해 주었다.
한국인에게 이순신은 ‘고전’이다. 논어, 맹자처럼 익숙하여 알지도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그래서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순신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공부하다가 존경하게 된 저자가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저자는 공부하여 아는 만큼 더 정성스럽게 존경하게 되어 책으로써 사람들과 ‘이순신 정신’을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을 알 수 있는데, 백성 사랑과 나라 사랑의 이순신을 존경하는 저자가 공직자였다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행복한 일이다. 저자의 이순신 공부는 독자인 나를 무지와 오해에서 끌어내 준 것뿐만이 아니라 나를 ‘이순신 공부’로 이끌어 주었다. 덕분에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찾아 읽었고,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도 읽었고, 영화 <명량>과 <차이 나는 클래스(저자 편 7·8회)>를 시청하기도 했다. 특히 이순신에 대해 감히 안다고 착각하여 안 읽어도 안다는 무모하고 무책임했던 나를 <난중일기>와 만나게 해 준 것은 큰 선물이다. 나랏밥을 먹는 교사인 나에게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공직자의 구체적 행동 강령을 담은 실천서라면,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공직자의 철학을 담은 입문서이다. 그것도 문학적인 함의를 담은 한 인간의 솔직하고 아픈 기록이다.
나는 영웅을 좋아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우리 모두 다 똑같은 결함투성이 인간인데, 그중에 누굴 감히 완벽한 영웅이라 칭하고 추종하겠는가. 이 세상은 한 명의 영웅의 힘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결함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서로 작은 힘으로 기대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세의 영웅이 아닌, 난세의 우리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우리’ 중에는 분명 타고난 천성과 끊임없는 수양으로 우리를 이끄는 ‘영웅’이 있음을 인정하고 감사하게 여기게 되었다. 책을 통해 그의 인생을 좇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황들에 나 자신을 대입해 보면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이순신은 흐트러짐 없이 해내고 있었다. 조금 편하기 위해 남의 힘에 기대어 나의 문제를 해결한 적이 없는가, 최선을 다한 나의 노력을 왜 알아주지 않는가라며 서운해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는가, 경쟁자라고 여겨지는 동료의 흠집을 떠벌리지 않았는가, 나에게 잘못한 일을 상대방에게 그대로 되갚아 주려고 하지 않았는가,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당장의 성과가 드러나는 일을 추구하지 않았는가.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며 그 상황들에 ‘나’를 대입하고 대답해 봐도 나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하는 일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이순신 앞에서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선조를 극렬하게 원망하고, 원균을 무참하게 조롱하며 책을 읽는데, 정작 이순신은 그렇지 않았다.
이 세상의 모든 비법은 모두 공개되어 있다. 멋진 몸매를 만들고 싶으면 운동과 음식 조절을 하면 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으면 좋은 재료와 정성을 쏟으면 된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으면 꿈에 대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부단한 노력의 과정 속에서 후회 없이 정성을 다하면 된다. 하지만 이미 알려진 것이 비법일 리 없다는 몽매한 의심과, 실천하기 어렵고 피곤하기만 하다며 비법을 무시하고 온갖 요령에 얽매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이순신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다. 저자는 이순신의 아름다운 내면적 가치를 사랑, 정성, 정의, 자력을 꼽았는데, 그중에서도 백미인 ‘정성’이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빛나는 가치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말보다 묵은 말의 진의를 깨닫게 되는 일들이 생기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수차례 무릎을 치는 뜻밖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이순신은 전쟁의 장수로서 백성을 살리기 위해 즉,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적군과 아군의 정보를 수집하고(知彼知己 百戰不殆), 미래의 일을 예측하고 전심전력으로 방비하며(有備無患),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위기의 현재를 승리로 변화시키며(唯天下至誠 爲能化),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은 ‘다함’일 뿐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盡人事待天命). 중고등학교 급훈으로 종종 걸렸을 법한 묵은 말들이 진리를 담은 빛나는 말들로 가슴을 울렸다. 저자의 이순신 공부는 우리가 전혀 몰랐던 비법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아는 것이 실천되었을 때의 귀한 결과를 알려 주고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으며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위태로운 바다 진중에서 몹시 아픈 날들이 많았던 모습에 마음이 아팠고, 요즘 말로 하면 트리플 A형이라 할 만큼 세심하고 감성적인 그가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그는 스트레스와 걱정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잠 못 이루고, 백성을 살리기 위한 전쟁의 지휘관으로서 매일 날씨와 전력 준비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의 학습 플래너처럼 매일매일 해야 할 일과 한 일이 꼼꼼하게 체크되어 있었다. 노모가 평안하다는 말에 또 한시름을 놓고, 군율에 의해 처형한 장졸과 자신이 죽인 적군의 원혼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무리 운주당에서 전략을 세우기 위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소통하는 민주적인 지휘관이었다고 하지만, 솔직한 자신의 몸과 마음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스스로를 위무했던 인간적인 속 사정에 마음이 아팠다. 일기를 쓰는 자도, 죽은 이의 일기를 읽는 자도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저자의 책에서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을 읽으며 울컥했는데, <난중일기>에서 노량해전의 일기가 없는 것을 보며 또 울컥해 버렸다.
저자가 이순신 정신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쓰면서 가장 걱정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 아마 이순신에 대한 자신의 진심 어린 존경이 ‘맹신’으로 보일 것을 걱정했을 것 같다. 그런 걱정에 휩쓸려 대부분의 평전이 그러하듯 최대한 객관화된 서술자를 등장시키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저자가 이순신의 ‘정성’에 매료된 것처럼, 독자인 나도 저자의 ‘정성’에 감동받아 우매한 맹신이라 느껴지지 않았고, 이런 이유 있는 맹신이라면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일생을 담은 책의 마지막 장의 시는 이순신에 대한 저자의 지극한 존경의 마음이 향기로운 필력으로 압축적으로 오롯이 전해졌다.
이제 나에게 이순신은 박제된 ‘동상’도 아니고, 읽지 않은 ‘고전’도 아니다. 그가 어떻게 죽을힘을 다해 제힘으로 백성을 구하는 기적적인 승리를 이루었는지도 알게 되었고, 그 정신의 실체도 아직은 어렴풋하지만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이 이렇게 숭고하며 의미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참으로 멋지다. 백성 사랑과 나라 사랑이 한 몸이었던 이순신을 온몸으로 존경한 저자가 우리 사회의 주요한 공직자였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럽다. 자신의 참 스승의 삶과 정신을 후손들과 나누고 싶어 이 책을 썼다는 것이 저자의 40년 가까운 ‘준비’이며, 독자인 나를 감동시킨 ‘정성’이므로 이 책은 저자가 이순신의 가치를 체화한 것의 산물이다. 자고로 제자는 스승을 꼭 닮는 법이라 했다. 이제 나는 또 한 명의 이순신 공부를 하는 제자가 되려고 한다. 이순신이 항상 이길 만한 전쟁에만 나가 싸웠기 때문에 이겼다는 무식한 말장난을 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해 줄 것이다. 이길 만한 전쟁이 아니고, 이길 수 있는 전쟁이 되도록 제힘으로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고 말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죽음이 늘 목전에 있는 내일이 없는 사람이라 오늘의 일기를 꼬박꼬박 적었다고 말이다. 제힘으로 죽을힘을 다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필승(必勝)과 상승(常勝)의 이순신이 될 수 있다.
◈ 장려작 - 엄지환
“그대를 존경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삶이 고단할 때 자신이 존경하는 롤 모델을 떠올리는 것 같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의 학창 시절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 1순위는 단연 ‘이순신’이었다. 마치 하나의 공식처럼, 이순신이라는 위인은 우리의 삶 속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누구보다 유명하지만, 사실 내게 이순신이란 존재에 대한 지식은 막연했다. 그나마 떠오르는 것이라곤 학익진,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 거북선 정도에 불과했다.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그의 일대기를 조금이나마 접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의 삶 속 숨겨진 정수(精髓)는 흐릿한 안개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허상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무엇이 그를 400년도 넘게 지난 지금까지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만들었던 것인지. 그리고 이순신의 삶을 알게 된 후 나는 깨달았다. 그는 결단코 롤 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가끔 TV를 통해 탑 연예인들의 일상을 보게 되곤 한다. 지극히도 평범한 나의 일상과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그들의 호화로운 삶을 바라보고 있으면, 부럽단 생각보다도 외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또 하나의 세상을 보고 있단 기분에 무덤덤해질 뿐이다. 이순신도 비슷했다. 그의 비현실적이고, 초인적인 면모에 존경심보단 거리감이 먼저 들었다. 인간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내가 천상계의 인물을 감히 좇는다는 것은 욕심에 불과한 일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가 이순신의 삶을 쉽사리 꿈꿀 수 없는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지극한 ‘정성’에 있다. ‘정성’은 저자가 이순신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사용했던 단어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만큼 정성은 이순신의 삶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중용’은 “정성이야말로 만물을 이루는 시작이요 끝이니, 정성이 없으면 이룰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군자는 정성스러움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라고 말한다. 정성을 귀하게 여긴 이순신은 일평생 군자가 되기 위한 10가지 기준을 지향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중 가장 실천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기준은 ‘목표 삼은 일을 실천하는 중 어려움이 생겨도 중간에 그만두지 않을 것’이었다.
사람의 인품은 특별히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명료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순신은 전란의 시간 속 오랜 고난을 겪었지만, 뚜렷한 인생관을 바탕으로 한 굳은 신념을 지니고 있었기에 중간에 그만두는 일 없이 일관된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설령 힘든 길이더라도 헛된 안일을 구하고자 불의와 타협한 일은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오직 가치를 지니는 것은 ‘선공후사’, 즉 그 어떤 중요한 가정사도 나라를 지키는 일보다 중요할 순 없다는 신념이었다. 그토록 확고한 신념과 지극한 정성이 이순신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성장시킨 비결이었던 것이다.
혹자는 이순신의 일대기에 탄복하며 새로운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할 것이다. 그런데 예사로운 내가 갑작스레 이순신을 본받아 지극한 정성을 기울이자니 뭔가 크나큰 어색함이 맴돈다. 불현듯 나타난 나의 정성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 것인지,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순신이 그랬듯 지금의 우리가 ‘전란 속 나라를 지키는 일’에 정성을 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목적을 잃은 정성은 길을 잃은 신념과 다를 바 없다. 예고 없이 찾아온 삶을 지속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 속에서, 당연한 일에 불과한 ‘생존’이란 목표는 정성을 다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 내게 오직 살아있음을 목표로 해야 하는 굴레의 삶이란 ‘시시포스’의 삶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성인이 된 이후,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의 부모님은 어떻게 이토록 고된 시간을 버티며 살아온 것이었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쇄도하는 시련을 피해 모두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인데, 그들은 무슨 초인적인 능력이 있었기에 숱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인지.
이순신의 위대한 리더십은 최고도로 발현된 사랑과 정성, 정의, 자력의 합일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한다. 나의 부모님도 그런 것이었을까.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며 그들이 가진 모든 사랑과 정성, 자력을 쏟아부었기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기적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일까.
그들의 삶이 주목한 단 한 가지 목표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어쩌면 나였을까. 끝이 없는 고초를 이겨낼 해결책을 찾고자 한계가 정해진 정성을 아낌없이 소모하며 살아온 이유가 오직 나를 향한 ‘일심’이었던 걸까. 정말 그들은 그것 하나만으로 지금껏 그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고 가시밭길을 헤쳐내며 살아왔던 것인가.
이순신을 사람들은 ‘성웅’이라 부른다. 성웅은 성인과 영웅을 합친 말로, ‘인간으로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뜻한다. 한없이 미워하고 원망했던 나의 부모님은 ‘성
웅’이란 호칭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들과 같은 길을 답습하
며 나는 확신했다. 그들을 감히 내 삶의 숨은 ‘영웅’이라 부르기에 일말의 부족함도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뒤돌아보면, 나의 부모님에게 존경심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부모님을 가장 존경한다는 말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제야 힘든 내색 한 번 없던 그들의 지친 어깨가 품은 의미를 깨달아버렸으니 말이다.
언젠가 나도 그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때의 내가 나의 부모님만큼 잘 해낼 수 있으리란 자신은 없다. 이순신과 같은 철저한 준비는커녕 갑작스레 주어진 선물에 당혹감만 표현하게 될 것이다. 다만 이순신에게 전란 속 지켜야 할 나라가 있었고, 나의 부모님께 거친 세상 속 지켜야 할 ‘나’라는 존재가 있었던 것처럼, 그 순간엔 내게도 ‘일심’을 바쳐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가 있을 것이다. 그 일심을 바탕으로 거짓 없는 정성을 다한다면, 나 역시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확고한 신념으로 이 삶에 대한 감사함을 가지게 되는 순간, 외로움에 지쳤을 그대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으리라.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 장려작 - 이운근
“새벽달 창(窓)에 들어 활과 칼을 비추네”
0. 이순신을 돌아보며
이순신이라는 한 사람을, 다시, 생각해 본다. 어릴 적의 그 이름은 거북선을 만든 무적의, 전쟁 영웅이었다. 머리가 제법 굵어졌을 때는 치밀한 태도로 맡은 책무를 잘 수행하지만 허무적인 세계관에 따라 자결을 택하는, 비극적인 영웅이었다. 지금은 그를 떠올리면 그가 가슴으로 밀려들어옴을 느낀다. 앞의 두 시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눈을 감은 채로 그의 일부만을 더듬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 하나를 온몸으로 밀고 나간, 불의한 세계를 뜨겁게, 또 당당하게 걸어간 사자(獅子)다. 질곡의 세상을, 수행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살아가려 했으나, 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자와 영웅의 모습으로, 우직하게 한 걸음씩, 그 소용돌이를 잠재워 간 초인이다. 그를 더 알아갈수록 그의 내면의 심연을 헤아리기조차 쉽지 않다. 그의 내면을 옆에서 그윽이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이 글은 인간 이순신의 내면의 바다로 건너가려는 걸음걸음이다. 이 글쓰기는 그의 바다가 보이는 해변을 거니는 내 추모의 과정이다. 그를 기리며 비명(悲鳴)으로 새긴, 그에게 바치는 내 개인의 비명(碑銘)이다.
명량
명량 바다 위에서 바다를 가득 덮으며 돌진해 오는 왜선, 사색(死色)이 되어 있었을 수하 장수와 병졸들을 보며 이순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길 수 있다 생각했을까. 세찬 바람 부는 배 위에서 적으로 둘러싸인 사방을 응시하고 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백의종군에서 명량해전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너무나 드라마틱하다. 이것은 차라리 고대의 영웅소설에 가깝지 현실의 이야기 같지 않다. 13척의 배와 칠천량 해전의 패잔병으로, 어떻게 300여 척의 적을 맞아 대승을 거둔단 말인가. 믿었던 장수들조차도 대장선에서 멀찍이 떨어져 사태를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다.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지 않는 안위를 불러 꾸짖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여기서 나간다고 살 수 있을 성싶으냐.” 가망 없어 보이는 이 싸움에서 죽고 싶지 않은 안위의 행동도 충분히 이해된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몸이 덜덜 떨리게 될 터이다. 그러나 이순신의 꾸짖음을 들은 안위는 적을 향해 앞장서 달려간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눈물겨워진다. 사지(死地)에서 죽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인데, 의를 지키기 위해 사지로 밀고 들어가는 그 모습이 눈물겹다. 이 가망 없어 보이는 싸움에서 몰려드는 무수한 적선을 바라보며, 초라한 배들로 한 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맞았을 그. 그때의 눈빛과 울분이 ‘명량(鳴梁)’이라는 기표에 묻어나는 것 같다. ‘명량’을 떠올리면 이 말이 쟁쟁 울린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남아 있습니다. 신의 몸이 살아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2.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부끄럽게도 미처 들여다보지 않아서, 이순신이 ‘성웅’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 ‘성웅(聖雄)’을 ‘성웅(成雄)’으로 생각했었다. 영웅 옆에 있을 말로 ‘성(聖)’은 부자연스러웠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성웅(聖雄)’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聖(성)’이 적절한지 깊이 공감했다. 어찌 ‘聖’이 아닐 수 있겠는가.
역사상 대부분의 전쟁 및 전투는 만화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모습과 많이 다르다. 실제 적과 맞닥뜨린 격전으로 죽은 사람보다 전염병, 추위,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다. 그래서 실제의 전투 수행력보다 보급품의 온전한 공급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곤 했다. 왜(倭)가 한양을 점령한 후에 조선의 왕을 쫓으려 대군이 북쪽을 향해 갔으나 그 속도가 임진전쟁 초반만 못한 원인 중 주요한 것은 군량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이다. 서쪽 물길로 보급품을 수송한다는 왜의 수륙병진 전략이 조선 수군의 해전 승리로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이같이 중요한 전투 물자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 <중용>에서 ‘정성스러운 사람은 미리 방향을 예정해놓음으로써 일을 당하여 낭패를 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바로 이순신이 그러하다. 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부터 대비를 하였고, 매사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그러하였기에 조정에서 어떠한 명령이 내려와도 이 책의 제목처럼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였다. 허언을 하지 않는 그라는 것을 감안하니 이 말소리의 파장이 묵직하게 물결치며 퍼지는 것 같다. 이렇게 정성스러운 사람이니 어찌 ‘聖’이 아닐 수 있겠는가.
3. 작은 것들을 위한 시선
이순신은 세세한 것에 눈길을 주는 정성스러움이 있다. 장계를 올릴 때 평민과 노비라도 전공이 있으면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다 적고, 전사한 사람도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다 적었다는 데서 따뜻한 눈길을 느낀다. 따뜻함을 지닌 사람은 말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작고, 약하고, 여린 것에 눈길을 건네고, 그 안쓰러움을 보듬으려는 사람이다.
무술년(1598년) 10월 7일. 맑음. 아침에 송한련이 군량 4되, 겉곡식 1되, 기름 5되, 꿀 3되를 바쳤다. 김태정은 볍쌀 2섬 1말을 바쳤다.
<난중일기>의 한 기록이다. 이 일기는 그가 노량 바다에서 전사하기 40여 일 전에 쓴 기록이다. 처음에는 이런 비근한 내용까지 굳이 왜 일기에 적을까 생각했었다. 이제는 작고 여린 것에 내려앉았을 이순신의 시선의 온도를 헤아린다. 23전승으로 나라를 구한 영웅, 삼도수군통제사가 ‘몇 되’의 곡식을 들여다본다. 김태정과 송한련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그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고, 큰 것은 무수한 작은 것으로 이루어지고, 작은 것을 든 이의 작지 않은 마음을 알아본 자의 시선일 것이다. 이제 그 붓끝에 담았을 마음을 떠올린다. 형용사를 배제한 그의 언어에서 바다를 앞에 둔 절벽 위에서 수라(修羅) 세상을 자신만의 손길로 쓰다듬었을 그의 엄정한 내면을 떠올린다. 이렇게 따뜻한 시선을 가졌기에 그는 성웅(聖雄)인 것이다.
4.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책을 읽으며 윤동주의 서시를 떠올렸다. 이순신이야말로 하늘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려 했던 사람이라 생각한다. 사사로운 관계의 인물을 뽑아달라는 상관 서익의 요청을 거절하고 완강히 버티고, 직속상관인 성박이 거문고를 만들기 위해 만호영 객사 앞뜰의 오동나무를 베려는 것에도 순응하지 않는다. 이순신이 파직되어 불우한 처지에 놓였을 때 류성룡은 이조판서인 율곡을 만나기를 권한다. 같은 집안인 이조판서의 율곡을 인사 책임자의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이순신은 거절한다. 병조판서인 유전이 이순신이 가진 좋은 화살통을 달라고 요구한다. 응낙하면 병조판서에 선을 댈 좋은 기회이고, 거절하면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모를 요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자를 택하지 않을까? 이순신은 “이까짓 화살통 하나쯤 드리는 거야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하찮은 이것 하나 때문에 다 같이 이름을 더럽힌다면 그 얼마나 미안한 일이겠습니까?”라고 일말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거절해 버린다.
이런 일화들을 보면 이순신이 얼마나 정도의 길을 걷는 인물인지가 보인다. 보통 사람들은 비열하고 그릇된 행동을 해도 행위 당시에는 부끄러워하는 일이 잘 없다. 그러다가 그것이 밝혀져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될 때 치욕스러워하며 뒤늦게 후회하곤 한다. 이순신은 잘못의 공개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비밀스러운 일이라 모두가 알지 못한다는 것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신독(愼獨)의 자세가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본인과 하늘은 알고 있다는 것. 하늘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사는 자세에서 나온 행동이리라.
5. 원균과 이순신, 이드와 초자아
원균과 이순신의 관계를 생각하면 갈등(葛藤)이란 말의 어원이 떠오른다. 칡과 등나무의 줄기가 얽히고설킨 것과 같은 악연이었다. 둘은 전쟁 중에 자주 부대꼈고, 사후에도 끊임없이 비견되고 있다. 이순신은 초자아가 아주 강한 인물로 보인다. 그런 이순신 옆에 선 원균은 그 이드가 부각돼 보인다. 원균은 왜적의 대군이 밀려들어오자 경상우수영이 보유한 전함 대부분을 불태우고 도망을 친다. 전공을 쌓기 위해 한참 전쟁 중에 수급을 챙기게 하는가 하면, 조선 백성의 주검에서도 수급을 챙겨 전공을 부풀리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술을 마시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해괴한 말을 많이 했다 한다. 칠천량 해전에서는 본인이 최고 지휘자인데 앞장서서 줄행랑을 친다. 뇌간과 대뇌변연계가 주로 관장하는 생존과 이득에 민감한 동물적인 모습을 띤다. 이순신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본인의 생존과 이득에 초연해 있다. 그는 대뇌피질의 전전두엽과 연관성이 큰 초자아가 우뚝 서서, 이드와 자아를 통제하는 인물로 보인다.
<이기적 유전자>는 개체를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고 본다. 이것은 개체가 이기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책은 많은 동물 중에서 특히 인간은 뇌라는 기관을 고도로 발달 시켜, 유전자의 명령에 저항할 수 있는 새 길을 열었다고 보고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지닌 인간이 가장 이기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초자아의 발달을 통해 인간은 매우 이타적인 삶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순신은, 원균과 같은 동물적인 지점에서 가장 반대편으로 뻗어간 초자아의 인간형(人間形)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둘은 서로의 행위와 가치관을 이해하여 수용하기가 힘든 것이다. 전쟁 후 패장인 원균은 이순신과 같은 선무 1등 공신에 책정된다. 이 때문에 원균을 이순신과 대등하게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수많은 증거들은 이순신만을 높일 뿐이다. 이순신과 원균의 인간형에서 우리가 취할 것은 무엇일까. 인간인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이기적 이드와 이타적 초자아 중 무엇이겠는가.
6. 사바 세계의 수도승
원균은 나라, 백성, 조선 수군을 위해 싸우기보다 자기 한 몸을 위해 공을 세울 생각에 몸이 달았다. 그 원균의 지속적인 중상모략, 붕당정치의 구도, 선조의 흐린 판단력 등이 작용하여 이순신은 누명을 쓰고 죄인이 된다. 고문을 당하고 죽을 위기에 처하고, 어머니가 백의종군 중에 돌아가시는 비극적인 일까지 겪는다. 그런데도 이순신은 말을 지어내어 원균을 모함한 적이 없다. 가장 내밀한 기록인 일기에도 원균의 행위를 탄식하고 안타까워할 뿐 그에 대한 증오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흔한 말로 이가 갈리고 눈에 불이 켜질’ 철천지원수가 아닌가. 그런데 죄를 받아 서울로 압송된 이후의 <난중일기>에는 원균이 언급조차 별로 없다. 가끔씩 언급이 있을 때는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 아니라 수군통제사의 직무를 내팽개치다시피 한 원균의 행태를 탄식할 때뿐이다.
이순신의 행동 중 또 놀라운 한 가지는 나라의 기념일마다 망궐례를 정성 들여 올린 점이다. 임금에 대한 충(忠)이 절대적이고 종교적인 믿음과 비슷할 정도로 충이라는 관념이 실체화되었던 시대이긴 하나, 그때의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너무 빨리 도주한 왕이었고 심지어 명에 망명까지 하려 한 무책임한 임금이었다. 게다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령을, 전쟁 일선에 있는 군 통수권자에게 계속 내리더니, 의심하여 모함하는 말을 듣고는 이순신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런 인물에 대해 계속 충심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일까. 새벽에 일어나 건강이 좋지 않은 몸으로 망궐례를 올리는 그의 내면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군자는 일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는 <논어>의 구절이 떠오른다. 그는 내면의 엄정함으로 남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만을 끊임없이 담금질한 것은 아닐까. 그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그가 전쟁 영웅이기보다는 오히려 사바세계에서 수도하는 승려와 같다고. 그가 죽는 곳의 이름은 관음포이다. 왜 하필 그 이름일까. 기막힌 우연 같은 그 이름은 어쩌면 수도승으로 살던 그가 열반에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일까. 때로 과학적이지 않은 사고방식이 위안을 준다.
7. 새벽달 창에 들어 활과 칼을 비추네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 바람에 놀란 기럭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달 창에 들어 활과 칼을 비추네
가족, 나라, 백성에 대해 걱정되는 바가 적지 않아 잠을 못 이루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세세하게 들춰 보이지 않고, 활과 칼을 비추는 달빛으로 끝맺어 버린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이순신의 모습이 잘 떠오른다. 새벽, 적요한 여명 속에서 여러 생각의 징검다리를 디뎠을 그. 서정시는 대개 화자의 감정을 잘 드러낸다. 억누를 수 없는 정서를 가누기 힘들어 언어로 토해내는 것이 서정 갈래다. 오래된 작품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한 편이다. 그런데 이순신은 글에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절제한다. 가끔씩 표현된 감정은 극도로 억눌렀음에도 삐져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미사여구로 사실이나 감정을 과장함이 없다.
옥과 향소에서 지난해부터 수군을 보내는 것이 성실치 못해서 도망하는 자의 수가 거의 백여명이나 되건만, 번번이 거짓말로 대답하기 때문에 이날 목을 베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보였다. 거센 바람이 그치지 않아 마음도 어지럽다.
군법에 따라 사형까지 내린 일이기에 마음의 흔들림이 적지 않았을 것인데, 겨우 세 줄로 기록한다. 바람에 거센 날씨에 본인의 마음을 조금 의탁할 뿐이다. 생각과 정서를 드러내기보다는 사실을 기록한다.
네 형과 네 누이와 너의 어머니도 또한 의지할 곳이 없어졌으니, 아직 목숨은 남아 있어도 마음은 죽고 껍데기만 있을 뿐이로다. 오직 통곡할 뿐이로다. 하룻밤 지내기가 1년처럼 길구나. 밤 9시경에 비가 내렸다.
그런데 아들 명의 부고를 전해 받았을 때의 글은 달랐다. 극도의 비통함을 절절하게 노래했다. 극심한 슬픔에 평소처럼 감정을 절제할 수 없었을 것이기에 그 아픔이 더 전해져왔다. 그런데도 그 서술의 끝은 ‘밤 9시경에 비가 내렸다’이다. 어떻게 이렇게 끝맺을 수 있단 말인가. 객관적 상관물은 내 감정의 결을 다른 차원에서 표현하여, 감정을 다른 질감으로 느끼게 해 준다. 감정을 한 번에 내뱉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삼키듯이 절제한 후 스며들게 하는 표현법이다. 이순신 글에 표현된 객관적 상관물은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쓴 것 같지 않다. 이순신은 본래 그러한 사람인 것 같다. 언어에 미사여구를 좀처럼 쓰지 않으니 절제된 객관적 상관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감정을 내뱉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스민 그대로 도저하게 살아가는 사람, 자신이 옳다고 여긴,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사람, 자신의 어깨에 얹힌 가엾은 세상을 내치지 못해, 어그러진 사바 세상의 일에 또 손을 대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에 아들의 죽음으로 통곡한 뒤에도 비가 내렸다고 적는 것이리라.
8. 군자불기(君子不器)
그는 23전승의 화려한 전쟁 영웅이라기에는 군대의 곡식, 꿀, 기름 등을 들여다볼 정도로 세세한 곳까지 눈길을 주는 모습을 보인다. 공무와 전쟁만 생각하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다 하기에는 아들 면이 죽었을 때 일기에 통곡의 언어를 토해낸다. 그 절절함이 극진해 언어일 뿐인 글인데도, 그것을 보는 이의 마음을 진동 시켜 눈물짓게 만든다. 가족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곡진(曲盡) 한 따뜻한 사람이라 하기에는 법을 어긴 자는 가차 없이 목을 베기도 한다. 이렇게 이순신이라는 한 존재는 단선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다층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떤 모습이 이순신일까. 어느 하나가 아니라 이 모습들의 총체가 ‘이순신’으로 명명된 존재일 것이다. <중용>에서 강조하는 중(中)은 평균의 中이 아니다. 역동적인 평형을 의미한다. 시중(時中)의 도를 이순신은 행하는 것 아니겠는가. <논어>에서 “군자는 불기(不器)”라 한다. 어느 하나의 재능이나 쓰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면적인 모습은 하나의 그릇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단(文壇)에서 억압적인 시대 현실에서도 불굴의 모습을 보인 시인으로 김수영이 있다. 김수영은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시에서 ‘스스로 온몸으로 도는 팽이’를 언급한다. 팽이는 중심을 잡고 스스로 온몸으로 돌아야 쓰러지지 않는다. 이순신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스스로 도는 팽이처럼 흔들림 없이 中을 지키며 온 존재로 밀고 나갔던 것이다. 니체가 말한 초인처럼. 그 삶의 뜨거움을 살갗으로 감각한다.
9. 그의 숨결을 느끼며
사람은 과시 욕구가 있다. 이것은 수백만 년의 인류 역사가 새긴 유전자의 흔적이다. 즉 사람은 남들이 자신의 우월한 자질과 뛰어난 업적을 알아보고 인정해 주길 바란다. 그것에 초연해지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었으면, 공자조차 <논어>의 가장 첫 장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면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라는 말을 했겠는가. 유명무실했던 조선 수군을 정비하여 기반을 다졌으며,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도, 모함을 받아 죄인이 된 이순신. 충성했던 임금, 지키려 했던 국가가, 그를 알아주기는커녕 그를 죽음 직전에까지 이르게 한다. 남이 알아주든, 아니든 묵묵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간 그를, 이제 우리가 알아주고 기억해야 할 때이다.
보통 시간이 흘러도 원자는 쪼개지는 일 없이 유지된다. 다른 원자와 반응해 새로운 모습이 되곤 하나 그 원자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은 생명을 이루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생명 아닌 것으로 변하며, 생명 아닌 것도 어느 때에 새로운 생명체의 일부가 된다. 불교의 연기(緣起)를 이렇게 유물론적으로도 이해한다. 물질적으로 세상을 통관(通觀)한 연기의 세계를 믿는다. 만물과 생명은 그물망처럼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의 뺨에 있었던 분자가 내 적혈구가 되어 혈관을 타고 흐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날숨에 나왔던 이산화탄소가 사과나무의 광합성에 쓰여 열매를 이루었고, 그 열매를 내가 먹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자아는 없지만 이 같은 영원성으로 위안 받는다.
그리고 문화 유전자라는 또 다른 복제자를 믿는다. 그것을 밈(meme)이라 부르든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 상관이 없다. 이순신의 고결하고 숭고한 정신은 비가 강물이 되고 강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듯이 내 몸으로 밀려와 몸의 결을 이루어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의 숨결을 떠올리고 느끼며, 그가 보여주었던 모습의 발끝이나마 좇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와 같은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기에 관음포에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그의 말은 그대로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그는 지금, 바로 여기, 현존해 있기 때문이다. 0. 이순신을 돌아보며
이순신이라는 한 사람을, 다시, 생각해 본다. 어릴 적의 그 이름은 거북선을 만든 무적의, 전쟁 영웅이었다. 머리가 제법 굵어졌을 때는 치밀한 태도로 맡은 책무를 잘 수행하지만 허무적인 세계관에 따라 자결을 택하는, 비극적인 영웅이었다. 지금은 그를 떠올리면 그가 가슴으로 밀려들어옴을 느낀다. 앞의 두 시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눈을 감은 채로 그의 일부만을 더듬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 하나를 온몸으로 밀고 나간, 불의한 세계를 뜨겁게, 또 당당하게 걸어간 사자(獅子)다. 질곡의 세상을, 수행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살아가려 했으나, 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자와 영웅의 모습으로, 우직하게 한 걸음씩, 그 소용돌이를 잠재워 간 초인이다. 그를 더 알아갈수록 그의 내면의 심연을 헤아리기조차 쉽지 않다. 그의 내면을 옆에서 그윽이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이 글은 인간 이순신의 내면의 바다로 건너가려는 걸음걸음이다. 이 글쓰기는 그의 바다가 보이는 해변을 거니는 내 추모의 과정이다. 그를 기리며 비명(悲鳴)으로 새긴, 그에게 바치는 내 개인의 비명(碑銘)이다.
명량
명량 바다 위에서 바다를 가득 덮으며 돌진해 오는 왜선, 사색(死色)이 되어 있었을 수하 장수와 병졸들을 보며 이순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길 수 있다 생각했을까. 세찬 바람 부는 배 위에서 적으로 둘러싸인 사방을 응시하고 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백의종군에서 명량해전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너무나 드라마틱하다. 이것은 차라리 고대의 영웅소설에 가깝지 현실의 이야기 같지 않다. 13척의 배와 칠천량 해전의 패잔병으로, 어떻게 300여 척의 적을 맞아 대승을 거둔단 말인가. 믿었던 장수들조차도 대장선에서 멀찍이 떨어져 사태를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다.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지 않는 안위를 불러 꾸짖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여기서 나간다고 살 수 있을 성싶으냐.” 가망 없어 보이는 이 싸움에서 죽고 싶지 않은 안위의 행동도 충분히 이해된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몸이 덜덜 떨리게 될 터이다. 그러나 이순신의 꾸짖음을 들은 안위는 적을 향해 앞장서 달려간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눈물겨워진다. 사지(死地)에서 죽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인데, 의를 지키기 위해 사지로 밀고 들어가는 그 모습이 눈물겹다. 이 가망 없어 보이는 싸움에서 몰려드는 무수한 적선을 바라보며, 초라한 배들로 한 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맞았을 그. 그때의 눈빛과 울분이 ‘명량(鳴梁)’이라는 기표에 묻어나는 것 같다. ‘명량’을 떠올리면 이 말이 쟁쟁 울린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남아 있습니다. 신의 몸이 살아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2.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부끄럽게도 미처 들여다보지 않아서, 이순신이 ‘성웅’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 ‘성웅(聖雄)’을 ‘성웅(成雄)’으로 생각했었다. 영웅 옆에 있을 말로 ‘성(聖)’은 부자연스러웠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성웅(聖雄)’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聖(성)’이 적절한지 깊이 공감했다. 어찌 ‘聖’이 아닐 수 있겠는가.
역사상 대부분의 전쟁 및 전투는 만화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모습과 많이 다르다. 실제 적과 맞닥뜨린 격전으로 죽은 사람보다 전염병, 추위,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다. 그래서 실제의 전투 수행력보다 보급품의 온전한 공급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곤 했다. 왜(倭)가 한양을 점령한 후에 조선의 왕을 쫓으려 대군이 북쪽을 향해 갔으나 그 속도가 임진전쟁 초반만 못한 원인 중 주요한 것은 군량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이다. 서쪽 물길로 보급품을 수송한다는 왜의 수륙병진 전략이 조선 수군의 해전 승리로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이같이 중요한 전투 물자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 <중용>에서 ‘정성스러운 사람은 미리 방향을 예정해놓음으로써 일을 당하여 낭패를 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바로 이순신이 그러하다. 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부터 대비를 하였고, 매사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그러하였기에 조정에서 어떠한 명령이 내려와도 이 책의 제목처럼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였다. 허언을 하지 않는 그라는 것을 감안하니 이 말소리의 파장이 묵직하게 물결치며 퍼지는 것 같다. 이렇게 정성스러운 사람이니 어찌 ‘聖’이 아닐 수 있겠는가.
3. 작은 것들을 위한 시선
이순신은 세세한 것에 눈길을 주는 정성스러움이 있다. 장계를 올릴 때 평민과 노비라도 전공이 있으면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다 적고, 전사한 사람도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다 적었다는 데서 따뜻한 눈길을 느낀다. 따뜻함을 지닌 사람은 말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작고, 약하고, 여린 것에 눈길을 건네고, 그 안쓰러움을 보듬으려는 사람이다.
무술년(1598년) 10월 7일. 맑음. 아침에 송한련이 군량 4되, 겉곡식 1되, 기름 5되, 꿀 3되를 바쳤다. 김태정은 볍쌀 2섬 1말을 바쳤다.
<난중일기>의 한 기록이다. 이 일기는 그가 노량 바다에서 전사하기 40여 일 전에 쓴 기록이다. 처음에는 이런 비근한 내용까지 굳이 왜 일기에 적을까 생각했었다. 이제는 작고 여린 것에 내려앉았을 이순신의 시선의 온도를 헤아린다. 23전승으로 나라를 구한 영웅, 삼도수군통제사가 ‘몇 되’의 곡식을 들여다본다. 김태정과 송한련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그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고, 큰 것은 무수한 작은 것으로 이루어지고, 작은 것을 든 이의 작지 않은 마음을 알아본 자의 시선일 것이다. 이제 그 붓끝에 담았을 마음을 떠올린다. 형용사를 배제한 그의 언어에서 바다를 앞에 둔 절벽 위에서 수라(修羅) 세상을 자신만의 손길로 쓰다듬었을 그의 엄정한 내면을 떠올린다. 이렇게 따뜻한 시선을 가졌기에 그는 성웅(聖雄)인 것이다.
4.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책을 읽으며 윤동주의 서시를 떠올렸다. 이순신이야말로 하늘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려 했던 사람이라 생각한다. 사사로운 관계의 인물을 뽑아달라는 상관 서익의 요청을 거절하고 완강히 버티고, 직속상관인 성박이 거문고를 만들기 위해 만호영 객사 앞뜰의 오동나무를 베려는 것에도 순응하지 않는다. 이순신이 파직되어 불우한 처지에 놓였을 때 류성룡은 이조판서인 율곡을 만나기를 권한다. 같은 집안인 이조판서의 율곡을 인사 책임자의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이순신은 거절한다. 병조판서인 유전이 이순신이 가진 좋은 화살통을 달라고 요구한다. 응낙하면 병조판서에 선을 댈 좋은 기회이고, 거절하면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모를 요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자를 택하지 않을까? 이순신은 “이까짓 화살통 하나쯤 드리는 거야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하찮은 이것 하나 때문에 다 같이 이름을 더럽힌다면 그 얼마나 미안한 일이겠습니까?”라고 일말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거절해 버린다.
이런 일화들을 보면 이순신이 얼마나 정도의 길을 걷는 인물인지가 보인다. 보통 사람들은 비열하고 그릇된 행동을 해도 행위 당시에는 부끄러워하는 일이 잘 없다. 그러다가 그것이 밝혀져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될 때 치욕스러워하며 뒤늦게 후회하곤 한다. 이순신은 잘못의 공개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비밀스러운 일이라 모두가 알지 못한다는 것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신독(愼獨)의 자세가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본인과 하늘은 알고 있다는 것. 하늘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사는 자세에서 나온 행동이리라.
5. 원균과 이순신, 이드와 초자아
원균과 이순신의 관계를 생각하면 갈등(葛藤)이란 말의 어원이 떠오른다. 칡과 등나무의 줄기가 얽히고설킨 것과 같은 악연이었다. 둘은 전쟁 중에 자주 부대꼈고, 사후에도 끊임없이 비견되고 있다. 이순신은 초자아가 아주 강한 인물로 보인다. 그런 이순신 옆에 선 원균은 그 이드가 부각돼 보인다. 원균은 왜적의 대군이 밀려들어오자 경상우수영이 보유한 전함 대부분을 불태우고 도망을 친다. 전공을 쌓기 위해 한참 전쟁 중에 수급을 챙기게 하는가 하면, 조선 백성의 주검에서도 수급을 챙겨 전공을 부풀리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술을 마시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해괴한 말을 많이 했다 한다. 칠천량 해전에서는 본인이 최고 지휘자인데 앞장서서 줄행랑을 친다. 뇌간과 대뇌변연계가 주로 관장하는 생존과 이득에 민감한 동물적인 모습을 띤다. 이순신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본인의 생존과 이득에 초연해 있다. 그는 대뇌피질의 전전두엽과 연관성이 큰 초자아가 우뚝 서서, 이드와 자아를 통제하는 인물로 보인다.
<이기적 유전자>는 개체를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고 본다. 이것은 개체가 이기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책은 많은 동물 중에서 특히 인간은 뇌라는 기관을 고도로 발달 시켜, 유전자의 명령에 저항할 수 있는 새 길을 열었다고 보고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지닌 인간이 가장 이기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초자아의 발달을 통해 인간은 매우 이타적인 삶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순신은, 원균과 같은 동물적인 지점에서 가장 반대편으로 뻗어간 초자아의 인간형(人間形)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둘은 서로의 행위와 가치관을 이해하여 수용하기가 힘든 것이다. 전쟁 후 패장인 원균은 이순신과 같은 선무 1등 공신에 책정된다. 이 때문에 원균을 이순신과 대등하게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수많은 증거들은 이순신만을 높일 뿐이다. 이순신과 원균의 인간형에서 우리가 취할 것은 무엇일까. 인간인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이기적 이드와 이타적 초자아 중 무엇이겠는가.
6. 사바 세계의 수도승
원균은 나라, 백성, 조선 수군을 위해 싸우기보다 자기 한 몸을 위해 공을 세울 생각에 몸이 달았다. 그 원균의 지속적인 중상모략, 붕당정치의 구도, 선조의 흐린 판단력 등이 작용하여 이순신은 누명을 쓰고 죄인이 된다. 고문을 당하고 죽을 위기에 처하고, 어머니가 백의종군 중에 돌아가시는 비극적인 일까지 겪는다. 그런데도 이순신은 말을 지어내어 원균을 모함한 적이 없다. 가장 내밀한 기록인 일기에도 원균의 행위를 탄식하고 안타까워할 뿐 그에 대한 증오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흔한 말로 이가 갈리고 눈에 불이 켜질’ 철천지원수가 아닌가. 그런데 죄를 받아 서울로 압송된 이후의 <난중일기>에는 원균이 언급조차 별로 없다. 가끔씩 언급이 있을 때는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 아니라 수군통제사의 직무를 내팽개치다시피 한 원균의 행태를 탄식할 때뿐이다.
이순신의 행동 중 또 놀라운 한 가지는 나라의 기념일마다 망궐례를 정성 들여 올린 점이다. 임금에 대한 충(忠)이 절대적이고 종교적인 믿음과 비슷할 정도로 충이라는 관념이 실체화되었던 시대이긴 하나, 그때의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너무 빨리 도주한 왕이었고 심지어 명에 망명까지 하려 한 무책임한 임금이었다. 게다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령을, 전쟁 일선에 있는 군 통수권자에게 계속 내리더니, 의심하여 모함하는 말을 듣고는 이순신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런 인물에 대해 계속 충심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일까. 새벽에 일어나 건강이 좋지 않은 몸으로 망궐례를 올리는 그의 내면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군자는 일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는 <논어>의 구절이 떠오른다. 그는 내면의 엄정함으로 남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만을 끊임없이 담금질한 것은 아닐까. 그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그가 전쟁 영웅이기보다는 오히려 사바세계에서 수도하는 승려와 같다고. 그가 죽는 곳의 이름은 관음포이다. 왜 하필 그 이름일까. 기막힌 우연 같은 그 이름은 어쩌면 수도승으로 살던 그가 열반에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일까. 때로 과학적이지 않은 사고방식이 위안을 준다.
7. 새벽달 창에 들어 활과 칼을 비추네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 바람에 놀란 기럭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달 창에 들어 활과 칼을 비추네
가족, 나라, 백성에 대해 걱정되는 바가 적지 않아 잠을 못 이루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세세하게 들춰 보이지 않고, 활과 칼을 비추는 달빛으로 끝맺어 버린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이순신의 모습이 잘 떠오른다. 새벽, 적요한 여명 속에서 여러 생각의 징검다리를 디뎠을 그. 서정시는 대개 화자의 감정을 잘 드러낸다. 억누를 수 없는 정서를 가누기 힘들어 언어로 토해내는 것이 서정 갈래다. 오래된 작품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한 편이다. 그런데 이순신은 글에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절제한다. 가끔씩 표현된 감정은 극도로 억눌렀음에도 삐져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미사여구로 사실이나 감정을 과장함이 없다.
옥과 향소에서 지난해부터 수군을 보내는 것이 성실치 못해서 도망하는 자의 수가 거의 백여명이나 되건만, 번번이 거짓말로 대답하기 때문에 이날 목을 베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보였다. 거센 바람이 그치지 않아 마음도 어지럽다.
군법에 따라 사형까지 내린 일이기에 마음의 흔들림이 적지 않았을 것인데, 겨우 세 줄로 기록한다. 바람에 거센 날씨에 본인의 마음을 조금 의탁할 뿐이다. 생각과 정서를 드러내기보다는 사실을 기록한다.
네 형과 네 누이와 너의 어머니도 또한 의지할 곳이 없어졌으니, 아직 목숨은 남아 있어도 마음은 죽고 껍데기만 있을 뿐이로다. 오직 통곡할 뿐이로다. 하룻밤 지내기가 1년처럼 길구나. 밤 9시경에 비가 내렸다.
그런데 아들 명의 부고를 전해 받았을 때의 글은 달랐다. 극도의 비통함을 절절하게 노래했다. 극심한 슬픔에 평소처럼 감정을 절제할 수 없었을 것이기에 그 아픔이 더 전해져왔다. 그런데도 그 서술의 끝은 ‘밤 9시경에 비가 내렸다’이다. 어떻게 이렇게 끝맺을 수 있단 말인가. 객관적 상관물은 내 감정의 결을 다른 차원에서 표현하여, 감정을 다른 질감으로 느끼게 해 준다. 감정을 한 번에 내뱉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삼키듯이 절제한 후 스며들게 하는 표현법이다. 이순신 글에 표현된 객관적 상관물은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쓴 것 같지 않다. 이순신은 본래 그러한 사람인 것 같다. 언어에 미사여구를 좀처럼 쓰지 않으니 절제된 객관적 상관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감정을 내뱉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스민 그대로 도저하게 살아가는 사람, 자신이 옳다고 여긴,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사람, 자신의 어깨에 얹힌 가엾은 세상을 내치지 못해, 어그러진 사바 세상의 일에 또 손을 대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에 아들의 죽음으로 통곡한 뒤에도 비가 내렸다고 적는 것이리라.
8. 군자불기(君子不器)
그는 23전승의 화려한 전쟁 영웅이라기에는 군대의 곡식, 꿀, 기름 등을 들여다볼 정도로 세세한 곳까지 눈길을 주는 모습을 보인다. 공무와 전쟁만 생각하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다 하기에는 아들 면이 죽었을 때 일기에 통곡의 언어를 토해낸다. 그 절절함이 극진해 언어일 뿐인 글인데도, 그것을 보는 이의 마음을 진동 시켜 눈물짓게 만든다. 가족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곡진(曲盡) 한 따뜻한 사람이라 하기에는 법을 어긴 자는 가차 없이 목을 베기도 한다. 이렇게 이순신이라는 한 존재는 단선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다층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떤 모습이 이순신일까. 어느 하나가 아니라 이 모습들의 총체가 ‘이순신’으로 명명된 존재일 것이다. <중용>에서 강조하는 중(中)은 평균의 中이 아니다. 역동적인 평형을 의미한다. 시중(時中)의 도를 이순신은 행하는 것 아니겠는가. <논어>에서 “군자는 불기(不器)”라 한다. 어느 하나의 재능이나 쓰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면적인 모습은 하나의 그릇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단(文壇)에서 억압적인 시대 현실에서도 불굴의 모습을 보인 시인으로 김수영이 있다. 김수영은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시에서 ‘스스로 온몸으로 도는 팽이’를 언급한다. 팽이는 중심을 잡고 스스로 온몸으로 돌아야 쓰러지지 않는다. 이순신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스스로 도는 팽이처럼 흔들림 없이 中을 지키며 온 존재로 밀고 나갔던 것이다. 니체가 말한 초인처럼. 그 삶의 뜨거움을 살갗으로 감각한다.
9. 그의 숨결을 느끼며
사람은 과시 욕구가 있다. 이것은 수백만 년의 인류 역사가 새긴 유전자의 흔적이다. 즉 사람은 남들이 자신의 우월한 자질과 뛰어난 업적을 알아보고 인정해 주길 바란다. 그것에 초연해지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었으면, 공자조차 <논어>의 가장 첫 장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면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라는 말을 했겠는가. 유명무실했던 조선 수군을 정비하여 기반을 다졌으며,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도, 모함을 받아 죄인이 된 이순신. 충성했던 임금, 지키려 했던 국가가, 그를 알아주기는커녕 그를 죽음 직전에까지 이르게 한다. 남이 알아주든, 아니든 묵묵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간 그를, 이제 우리가 알아주고 기억해야 할 때이다.
보통 시간이 흘러도 원자는 쪼개지는 일 없이 유지된다. 다른 원자와 반응해 새로운 모습이 되곤 하나 그 원자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은 생명을 이루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생명 아닌 것으로 변하며, 생명 아닌 것도 어느 때에 새로운 생명체의 일부가 된다. 불교의 연기(緣起)를 이렇게 유물론적으로도 이해한다. 물질적으로 세상을 통관(通觀)한 연기의 세계를 믿는다. 만물과 생명은 그물망처럼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의 뺨에 있었던 분자가 내 적혈구가 되어 혈관을 타고 흐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날숨에 나왔던 이산화탄소가 사과나무의 광합성에 쓰여 열매를 이루었고, 그 열매를 내가 먹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자아는 없지만 이 같은 영원성으로 위안 받는다.
그리고 문화 유전자라는 또 다른 복제자를 믿는다. 그것을 밈(meme)이라 부르든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 상관이 없다. 이순신의 고결하고 숭고한 정신은 비가 강물이 되고 강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듯이 내 몸으로 밀려와 몸의 결을 이루어 흐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의 숨결을 떠올리고 느끼며, 그가 보여주었던 모습의 발끝이나마 좇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와 같은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기에 관음포에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그의 말은 그대로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그는 지금, 바로 여기, 현존해 있기 때문이다.
◈ 장려작 - 이찬희
“무(武 )로써 문(文 )을 실현하다”
이순신 장군이 그처럼 불리한 전세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승리를 계속해서 이끌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서 단지 그의 뛰어난 전쟁 전술 때문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매우 단편적인 이해에 불과하다. 그가 지략이 뛰어나서, 용맹해서, 혹은 충성심이 강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만 말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의 삶과 인격의 총체적인 모습을 담기에는 너무나 빈곤한 설명이다. 이순신은 단지 뛰어난 전략가로서, 즉 무인(武人)으로서만 평가될 수는 없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묘사되는 내용들인 활쏘기, 바쁜 공무, 전쟁 준비, 외교적 정세 파악, 날씨와 지형에 대한 관심, 엄격한 상벌, 밤늦도록 이어지는 전투 회의, 그리고 부하 장군들의 성품에 대한 주의 깊은 관심과 평가 등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이순신 장군은 전투에서 보여 주었던 활약 이전에 오랫동안 승리의 준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수행하고 있었다. 책의 부제목처럼 이순신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러한 전쟁 준비 가운데서 단순히 전쟁을 잘하는 전술적 측면만이 아니라 군사 경영과 군사 기술, 인사 관리 등 총체적 전략의 수행과 관련한 이순신 장군의 지휘자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장군 본인의 정신 수양이자 체력 단련인 꾸준한 활쏘기 훈련에서뿐만 아니라 전쟁 준비와 관련하여 군영에서 벌어지는 제반의 복잡한 사안들을 처리해 나가는 모습에서, 임기응변보다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장기적인 계획성에 의한 이성적 판단력이 돋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불리한 싸움을 이겨 냈다기보다는 이미 이긴 싸움을 했었던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보다 올바를 것이다. 마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